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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신체 사이를 순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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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587회 작성일22-03-1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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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신체 사이를 순환하며
《엘리베이션/서큘레이션》 전시 기획자(김지연, 이민지, 이영준)와의 대화



일시: 2022년 1월 22일 오후 1시
장소: 낙원상가 d/p
참석: 권태현(『춤in』 편집위원), 김지연(d/p), 이민지(d/p), 이영준(기계비평가, 계원예술대학교 교수)
편집: 권태현



낙원상가에서 오랜 시간 운용되던 엘리베이터가 철거되면서 시작된 프로젝트인 《엘리베이션/서큘레이션》은 기계 장치에 대한 리서치에서 시작하여 기계와 신체를 유비하면서 다양한 예술 작업으로 확장되었다. 전시를 함께 기획한 김지연, 이민지, 그리고 이영준과 함께 전시가 그려내고 있는 경로를 다시 한번 톺아본다.



낙원상가의 전시공간 d/p에서 열렸던 《엘리베이션/서큘레이션》(2021.12.15-.12.31.)의 기획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엘리베이션/서큘레이션》은 낙원상가에서 운용되던 오래된 엘리베이터가 철거되면서 시작된 프로젝트이다. 전시는 엘리베이터에서 시작하시지만, 단순히 기계 장치를 전시하는 것에서 나아가 다양한 예술 작업으로 확장되었다. 그 작업들은 건축과 신체의 관계, 상승과 순환이라는 운동성, 무엇보다 몸과 사물의 연결에 대한 논의까지 파생시키고 있었는데, 이런 확장과 연결은 어떻게 기획된 것일까? 전시를 기획한 d/p의 김지연과 이민지, 그리고 기계비평가 이영준과 함께 그 경로를 함께 톺아보았다. 흥미롭게도 몸과 사물에 대한 이야기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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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권태현, 이영준, 김지연, 이민지 ⓒ오창동

권태현: 지금부터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녹취를 시작해도 괜찮을까요?

김지연: 그럼요. 인터뷰를 녹음하고 다시 글로 풀어내고, 편집하는 과정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가끔 그런 일을 하게 되는데, 요즘은 녹음을 하면 실시간으로 텍스트로 변환해주는 프로그램들이 있더라고요. 음성 인식 기능도 인공지능이 발달되면서 점점 더 쓸만해지는 것 같아요. 최근에 써보니 굉장히 편하던데요.

권태현: 맞아요. 사실 저도 애용합니다. 그런데, 인공지능 기반이더라도 예술 분야의 전문 용어는 아직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아요. 예술과 관련해서는 아직 ‘빅’데이터가 쌓이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해주신 것을 오늘 나눌 이야기와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그런 기술적 변화가 인터뷰라는 행위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 같기도 하네요. 청소기가 청소라는 행위를 바꾸고, 자율주행이 운전이라는 행위를 아예 다른 움직임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처럼 말이죠. 이렇게 우리의 이야기도 기계 장치와 함께 시작을 하게 되네요. (웃음) 이런 맥락에서 《엘리베이션/서큘레이션》이 그려내는 사물, 기계, 건축과 그것의 운동성이 신체와 연결되는 맥락을 설정하는 방법이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우선 이번 기획의 출발점이 된 엘리베이터에 대한 이야기부터 듣고 싶습니다.

이민지: 낙원상가가 1968년 즈음에 준공되었는데, 처음부터 5개의 엘리베이터가 있었다고 해요. 그것들이 오랜 시간을 거치며 여러 차례 교체가 되었고, 그중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것이 이번에 철거된 소위 ‘3호기’입니다. 스위스의 쉰들러(Schindler)사에서 만든 기계식 엘리베이터였어요. 낙원상가는 철저히 관리되는 건물이라서 최근까지도 전혀 문제없이 작동했었고, 다만 워낙 오래된 기계이다 보니 운행 층수를 제한하는 정도였죠. 그러다가 2019년 9월에 안전 기준이 바뀌어서 완전히 교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 엘리베이터의 철거를 앞두고, 낙원상가를 관리·운영하는 대일건설과 함께 저희 d/p 운영진들이 엘리베이터의 기계실을 함께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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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상가의 엘리베이터들, 가장 왼쪽이 ‘3호기’ 엘리베이터가 있었던 자리이다.

김지연: 그 낙원상가 3호기 엘리베이터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엘리베이터는 아니더라도, 가장 오래 운영된 엘리베이터였습니다. 저희가 낙원상가에서 예술문화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그렇게 귀한 것을 그냥 보낼 수 없다는 생각으로 무엇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엘리베이터 기계실을 보고 와서는 곧바로 기계비평을 하시는 이영준 선생님께 연락을 취했습니다.

이민지: 다행히 이영준 선생님도 급히 시간을 내주셨고, 그때 선생님께서 송호철 감독님과 동행해주셔서 영상까지 남길 수 있게 되었어요. 이후에는 계획대로 바로 철거가 진행되었죠. 그때 급히 움직이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못 하고 넘어갈 뻔했어요.

김지연: 그렇게 시작해서 엘리베이터에 대한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일단은 그 기계 장치 자체를 면밀히 조사하기도 했어요. 역사적인 것도 그렇지만, 기계가 일단 아름다웠거든요. 거기에서 나아가 d/p가 지속적으로 신체와 움직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기계를 우리의 기획적 맥락과 연결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건물을 인간과 연결해 생각해보고, 건물에서의 엘리베이터의 기능을 신체의 기능과 연결해보는 상상을 펼치기 시작했죠.


서로 연결되는 순환들

권태현: 그런 고민과 상상에서 전시 주제인, ‘엘리베이션’(elevation, 상승)과 ‘서큘레이션’(circulation, 순환)이라는 운동성이 도출된 것인가요?

김지연: 처음에는 굉장히 단순한 방식으로 접근한 것이었어요. 엘리베이터는 수직 운동을 하는 기계이고, 그것을 통해서 인간들은 더 높은 건물을 세울 수 있게 되었잖아요. 그런데 그런 욕망은 그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더 높게 올라가고 싶고,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은 욕망들과 연결되는 것이죠.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 긍정적인 차원에서 엘리베이터는 단지 상승과 하강뿐만 아니라, 건물의 각 층에 사람들을 퍼뜨리는 기능을 하는 장치입니다. 고층 건물에서 각 층의 계열과 구분을 무너뜨리면서 일종의 순환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기획 초기부터 이윤정 안무가와 많이 나누었습니다. 특히 건물과 신체를 함께 놓고 보았을 때, 신체에서 엘리베이터의 기능을 하는 것이 혈관계나 신경계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죠. 신체에서 정보를 전달하고, 움직임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신경계잖아요. 여기서부터 시작해 이윤정 안무가는 신경계에 대한 춤을 구상하게 된 것입니다.

이영준: 그런 순환은 기계도 마찬가지예요. 기본적으로 모든 기계는 정보 기계입니다. 무언가 정보를 입력해서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기계라고 하죠. 가장 간단히는 전원 스위치를 눌러서 켜고 끌 수 있는 제어를 생각해볼 수 있어요. 그리고, 그런 정보의 순환을 구현하는 방식이 바로 우리가 쉽게 사용하는 말인 피드백입니다. 피드백은 단지 회신을 주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 자체가 순환의 문제죠. 기계는 그런 순환 속에서 작동합니다. 엘리베이터도 같은 방식으로 정보를 순환시키는 기계에요. 이런 순환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에서 왜 중요하냐면, 그렇게 기계 내부의 미시적인 정보의 순환을 통해서 작동하는 기계가 그 내부의 순환에 머물지 않고 사람들을 이동시키면서 또 다른 차원의 순환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엘리베이터 내부의 기계적 순환은 폐쇄 회로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전혀 다른 순환과 연결될 수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다른 순환들을 통해서 우리의 순환에 관해 생각할 수 있고, 다양한 추론을 할 수도 있죠. 그것은 논리적인 추론일 수도, 정서적 추론일 수도 있어요. 무엇보다 이번 전시 자체가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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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션/서큘레이션》에서 도슨트 퍼포먼스를 하는 이영준 기계비평가

권태현: 엘리베이터에서 시작되는 순환이라는 것이 가지는 다양한 차원이 정말 흥미롭네요. 기계를 작동시키는 것도 순환이고, 그렇게 작동되는 기계는 또 다른 순환을 만들어내고. 여기에서 순환이라는 것이 단지 상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게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지연: 생각해보면 엘리베이터의 철거 또한 하나의 순환이에요. 엘리베이터가 철거된 것은 그것의 작동이 허용된 유효 기간이 끝났기 때문이었죠. 사람으로 치면 수명이 다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수명이 다했다는 것은 곧 죽음, 다시 말해 순환이 멈추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 자체가 더 거대한 의미에서의 순환이기도 하죠. 말 그대로 다시 돌아가는. 그럼 기획적 맥락에서 과연 신체에서는 수명이 다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생각해보게 되었죠. 그래서 인체가 살아있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순환들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어요. 안무에서 산소의 순환, 그러니까 호흡에 대한 리서치도 여기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권태현: 산소의 순환이 흥미로운 점은, 우리는 산소를 통해 호흡하며 삶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산소 때문에 늙기도 하잖아요. 산화 작용이라고 하죠. 이런 식으로 순환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다층성을 통해서 또 다른 순환‘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네요.

이영준: 다시 기계에 비유해 이야기해보면, 그렇게 다양한 차원의 순환들은 사실 직접 연결되면 고장이 나버려요. 예를 들어, 컴퓨터에서 전력선과 정보선은 절대로 서로 섞이지 않아요. 다 분리되어있죠. 충전과 전송을 동시에 할 수 있는 UBS를 봐도 세부적으로는 4개의 핀이 있어서 전력 순환과 정보 순환을 각각 분리해 담당하고 있어요. 그런데, 또 중요한 점은 그것들이 서로 다른 분리된 순환의 체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실, 연동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전력이 있어야 정보의 순환이 가능한 것처럼 말이죠. 순환은 항상 단일하지 않아요. 무수한 순환의 채널들이 있죠. 엘리베이터 같은 기계도 그렇고, 사람의 신체도 마찬가지예요.

이민지: 기계실에서 본 것도 각각 부품들의 서로 다른 운동들이 각자의 역학으로 작동하지만, 그것이 연동되면서 결국 엘리베이터의 상하강 운동을 만들더라고요. 기계에서 하나의 부품은 정말 하나의 운동만을 반복하는데, 그것이 연결되어서 특정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 자체를 눈여겨보게 되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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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지 ⓒ오창동

이영준: 아마 신체의 장기들도 그런 식으로 작동할 거예요. 다만, 신체의 장기들은 조금 더 유기적이기에 호환성이 강하죠.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위암으로 위 절제술을 받은 사람은 소장이 커져서 위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확장된 신체로서의 기계

권태현: 이번 전시의 기획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 중 하나가 이렇게 순환이라는 것을 상징이나 알레고리 같은 차원이 아니라, 정말로 엘리베이터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이기도 했어요. 이영준 선생님이 쓰신 글에 보면, 엘리베이터가 사람들의 하체 근력에 영향을 주었다고 하듯이 말이에요.

이영준: 그 글에도 썼듯이 “확장된 신체” 같은 거죠. 도나 해러웨이(Donna J. Haraway)가 이야기하는 사이보그 같은 개념과도 연결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해러웨이는 몸과 기계가 직접 연결되는 것을 주로 이야기하지만, 그런 기계와의 연결이 몸 바깥에서도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 것들 중에서 엘리베이터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죠.

권태현: 소위 포스트 휴먼이나 사이보그 담론을 통해서는 보통 웨어러블 장치 같은 것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렇게 신체 외부의 기계들을 통해서 우리는 ‘이미’ 기계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을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이영준: 웨어러블한 감각은 꼭 몸에 부착되어야만 느끼는 것이 아니기도 해요. 공사장 한복판에 서 있는 것과 깔끔한 빌딩의 로비에 서 있는 것은 신체적으로 전혀 다르게 감각되잖아요. 입는다는 것은 꼭 피부에 닿는 것뿐만 아니라, 건축적인 것까지 충분히 확장할 수 있는 개념이죠. 특히 엘리베이터는 입는다는 느낌이 강한 것 같아요. 고급 호텔에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마치 나도 고급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죠. (웃음)

김지연: 건축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건축적 요소들이 인간의 옷으로 비유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발견되기도 해요. 건축에는 실제로 인체의 확장으로 생각할 것이 많습니다. 엘리베이터도 그렇지만, 공조 장치는 호흡을 연상시키고요. 건축도 몸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이런 비유는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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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오창동

권태현: 전시의 기획이 엘리베이터라는 기술적 환경이 우리의 신체 자체를 구성해버리는 점을 짚어내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어요. 하반신의 근력 이외에 또 어떤 신체의 변화를 생각해볼 수 있을까요?

이영준: 엘리베이터만 안 써도 충분히 운동이 되고, 다이어트도 할 수 있을 거에요. 그런데, 만약에 18층에 사는 사람이 엘리베이터 없이 매일 오르내리고, 혹시나 장이라도 보게 되는 날에는 오히려 몸을 해치게 될 것입니다. 기계를 쓰지 않는다고 무조건 신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의 몸은 이미 우리가 어려서부터 쓰던 기계에 맞추어져 있어요. 중간에 갑자기 어떤 기계를 버리면 몸은 오히려 망가질지도 모릅니다. 우리 신체가 애초에 기계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죠.

권태현: 그것 자체가 하나의 서큘레이션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기계들이 이미 우리의 신체와 같은 순환 속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영준: 그렇죠. 이미 우리 신체는 엘리베이터와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김지연: 장애인들에게는 이런 기계 장치들이 또 전혀 다른 의미가 될 거예요. 기계 장치 없이는 접근 가능성 자체가 차단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권태현: 더 큰 차원에서 이야기해보면,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고층 빌딩이라는 건축적 형식이 가능해졌고, 빌딩의 발달은 도시의 기능과 풍경, 우리의 삶을 모두 바꾸어 놓잖아요. 예컨대 엘리베이터는 고층 빌딩을 가능하게 하고, 고층 빌딩은 도시의 인구 밀도를 바꾸고, 도시의 인구 밀도는 우리의 삶을 바꾸고, 그것이 결국 우리의 몸을 바꾸는 연쇄를 생각해볼 수 있겠어요. 단지, 다리가 튼튼해지는 개인의 신체적 변화보다 더 복잡한 순환과 연결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몸이라는 기계, 그리고 춤

권태현: 이제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요? 먼저 이윤정 안무가와 기획 단계부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셨는데, 이윤정 안무가와 함께 고민을 나누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김지연: 몸을 정서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으로도 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이윤정 안무가가 정확히 그런 관점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이었어요.

권태현: 그렇게 만들어진 이윤정 안무가의 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더 듣고 싶네요.

이민지: 일단 작업의 제목이 <3 circles>였어요. 혀가 돌아가고, 장기가 돌아가고, 그리고 눈이 돌아가면서 몸 전체의 순환으로 나아간다는 컨셉을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신경계와 혈액의 순환을 다루게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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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3 circles> 퍼포먼스 기록 사진 ⓒ김중원

김지연: 그런데 순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순리대로 흐르는 것만을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작업을 함께 만들어나가면서 반순환이나 역순환 같은 개념도 다양하게 이야기하게 되었죠. 연결과 단절, 잘못 연결되거나, 끊어지는 것까지 포함되는 순환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윤정 안무가가 몸의 순환과 관련해서, 신체의 세 부분(눈, 입 척수)을 설정했어요. 눈은 세상을 보면서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기관이고, 입은 호흡하면서 외부의 공기를 받아들이죠. 몸 바깥의 요소들이 몸 안에 들어오면, 다른 에너지나 정보로 변환되어 몸 안의 기관을 타고 흘러요. 그는 눈, 입 다음으로 뇌와 온몸의 신경계를 연결하는 척수의 순환까지 상상하면서 세 가지 ‘서클’을 완성했어요. 몸이 외부와 관계를 맺는, 외부의 에너지나 산소를 받아들여 몸 안에서 소화를 시키고 또 다시 외부로 내보내는 작용, 그러니까 인체와 외부의 유기적 연결 관계 자체가 엘리베이션과 서큘레이션의 개념을 포괄하는 퍼포먼스의 핵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에너지가 돌고 도는 몸 안팎의 관계와 순환 속에서 온전히 존재하고 있는 몸을 보여주는 작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윤정 안무가와 나누었습니다.
이윤정 안무가가 이야기하길, 숨을 막 쉬면서 내장을 움직이다 보니까 입에 침이 계속 고인다는 거예요. 마치 기계의 윤활유처럼. 그 침을 삼킬 것이냐 방치할 것이냐 이런 것을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모두 안무에 녹아들었더라고요. 그는 결국 침을 밖으로 흘러나오게 하는 선택을 했어요. 그런 자연스러움. 순리에 맞게 신체가 작동할 때 발생하는 자연스러움이 곧 춤이 되도록 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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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3 circles> 퍼포먼스 기록 사진 ⓒ김중원

권태현: 그런데 춤을 보았을 때, 그런 내부의 순환 같은 것들은 몸 외부로 잘 드러나는 것이 아니잖아요. 주제에 대한 설명을 듣지 않으면, 신체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지점도 있을텐데, 그런 지점에 대한 고민도 나누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지연: 엘리베이션과 서큘레이션을 건물과 신체의 관계 속에서 이야기한다는 컨셉을 글로 써서 설명하는 건 어떤 식으로든 가능할지 모르지만, 예술 언어로 형상화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이 이야기를 어떤 작가가 풀어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정말 의심의 여지 없이 이윤정 안무가를 떠올렸어요. 이윤정 안무가는 <설근체조>도 그렇고, 많은 경우 움직임의 근원을 되짚어보는 것으로부터 작업을 해왔다고 생각해요. 그는 신체 안과 밖의 움직임 사이에서 연결점을 찾아내면서, 표피가 움직이는 동기는 내부의 움직임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차리도록 했어요. 그렇게 훈련된 이윤정의 몸이라면, 이 주제를 제대로 드러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안무가와 함께 순환, 상승에 대한 작업을 만들면서 고민했던 것 중 하나는 그 주제를 일방적으로 설명하거나 직접적으로 표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이윤정 안무가는 순환이나 상승을 몸으로 ‘표현’하지 않으면서 움직이되, 관객이 그 움직임의 메시지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죠. 사실 ‘표현’에 대한 문제는 요즘 무용가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또 한편으론 움직임을 과연 춤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고요. 이 작업을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안무가는 완결된 작업으로 마무리할지, 아니면 워크숍 형태로 내보일지도 고민했어요.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로 했죠. 이런 과정을 거쳐서 작업은 결국 인체와 세계의 어쩔 수 없는 유기적 순환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아주 단순하지만, 진솔한 몸의 언어가 제대로 된 공명의 장을 만들었어요. 안무가의 훈련된 신체가 에너지를 다루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정신이 제대로 고양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권태현: 저도 이윤정 안무가님의 작업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 사물로서의 몸과 같은 개념을 단지 관념적인 차원에 머무르게 하면서 상징적으로 표현하거나, 바깥에서 볼 수 있는 형식으로 만들지 않고, 몸을 정말 그런 상태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이었어요. 몸을 통해 무언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고, 그것이 시각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더라도 어떤 상태를 취하는 것 자체를 춤으로 만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윤정 안무가님의 작업 말고 또 다른 참여 작가들의 작업도 궁금하네요. 특히, 이옥경 작가님은 즉흥 공연도 하시고, 새로운 영상 작업도 하셨던 것으로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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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경, 이윤정 〈즉흥/discrete circulation〉 퍼포먼스 기록 사진

이민지: 이옥경 작가님은 건물에서 무엇이 가장 많이 순환하는지 살펴보시다가 택배를 나르는 수레가 미로 같은 상가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하셨다고 해요. 그것들이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순환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택배 수레에 카메라를 달아서 영상을 찍고, 택배 바퀴의 소리와 낙원상가 곳곳의 사운드들을 조합해서 작업셨어요.

권태현: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순환 중 하나가 바로 배달이나 택배 같은 로지스틱스라고 생각하는데, 전시가 그런 문제까지 확장되는 것 같네요. 하나의 엘리베이터에서 시작해서 이렇게 촘촘한 주제들로 뻗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이영준: 엘리베이터 기계 자체에 대한 리서치에도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어요. 또한 장치의 부품들을 전시하는 과정에서도 기획적 맥락에서 출발한 고민들을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엘리베이터의 부품들을 전시하지만,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감각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공간디자인을 맡아준 ‘공간의 기호들’이 큰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부품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선반 등 입체적인 공간 구성과 배치된 사물들 사이의 연결을 통해서 운동성을 발견할 수 있는 구성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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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션/서큘레이션》 전시 전경 ⓒ김중원

김지연: 참여자분들이 다루는 주제와 분야가 기계 자체, 건축, 그리고 몸을 기계로 파악하는 접근까지 모두 달랐어요.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는 기획을 구체화하면서 처음 구상과 방향이 굉장히 달라지기도 했는데, 그것 자체로도 흥미로운 과정이었습니다.

권태현: 저도 이번에 『춤in』 편집부에 들어와서 앞으로 ‘몸과 사물’이라는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번 전시가 아주 탁월한 방식으로 몸과 사물의 순환과 연결이 그려내는 경로를 보여주셔서 많은 것을 느끼고 또 배웠습니다. 오늘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모두 좋은 이야기 나누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지연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전시를 만들고 글을 쓴다. 최근에는 전시형식이 비물질적인 요소들을 가시화하는 전략에 흥미가 있다. 올해의 관심사는 ‘질감’이다. 창원조각비엔날레 큐레이터, 세계문자심포지아 예술감독, 제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을 역임했고, 전시공간 d/p를 운영했다. 안애순 안무가의 <척>과 <몸쓰다>에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했다. 현재는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으로 일하는 중이다.
이민지세계에 관심을 두며 전시를 기획하고 전시의 확장된 일들을 진행한다. 2018년 부터 d/p를 운영하고 있다. 2017년에 제주비엔날레 큐레토리얼 팀에서, 2016년에 아트인컬처에서 일했다.
이영준기계비평가, 항해자. 항해의 결과로 『페가서스 10000마일』이라는 책을 썼다. 한국의 주요 항만들을 바다에서 접근하며 둘러보고 데이터들을 모아 책을 낼 예정이다. 약력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울산 앞바다에서 울산항을 보며 산업항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권태현글을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예술계에서 활동하지만 쉽게 예술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들에 항상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예술 바깥의 것들을 어떻게 예술 안쪽의 대상으로 사유할 수 있을지 탐구한다. 정치적인 것을 감각의 문제로 파악하는 관점에 무게를 두고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7000eich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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