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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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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09회 작성일22-03-12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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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일

김지연_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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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class at the royal academy of painting and sculpture ⓒCharles Joseph Natoire

1.

서울무용센터에서 ‘전시가 움직임을 설계하는 방식’에 대해 워크숍을 했던 날, 한 무용인이 해주었던 말이 마음에 남았다. 무용인들이 전시의 언어, 전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협업하는 만큼, 우리에게 작업을 제안하는 시각예술가들도 무대의 특징과 무용의 조건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시각분야 사람들이 프로시니엄 무대의 속성에 대해, 그 무대에서 공연하는 우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무심함은 너무 쉽게 무례함으로 바뀐다. 그가 바라는 건 다른 장르의 예술언어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라기보다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의 바람을 따라 나 또한 습관적으로 무례함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다. 따지고 보면, 그간 일해 온 시각예술 업계의 맥락에서 편의에 따라 무용인들을 보았지, 그들의 입장에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데 게을렀으므로. 그와의 대화는, 사람들은 철저히 자기 세계 안에 갇혀 있으며, 그로부터 빠져나와 ‘다름’을 만나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장르 간 경계가 무너졌다고 하지만, 하나의 장르가 정의 내려지기까지 쌓여 온 세월의 역사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 장르의 정체성에 길들여 나의 언어를 구축해온 이들이 타 장르의 언어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어쩌면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에 버금갈 만큼 길고 지난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이 음성언어, 문자언어를 초월한 세계라고 말하지만, 잘 모르겠다. 한 작품이 말 그대로 ‘언어’의 벽을 뛰어넘어, 있는 그대로 상대에게 전해지기 위해서는 그 예술가의 역량이 절대적이다. 대부분 그들이 다루는 ‘예술언어’를 학습해야만 이해 가능한 시점이 온다. 그리고 점점 더 ‘작품’이 표출하는 의미의 세계에 온몸으로 닿는 일이 어렵게 다가온다.

미술계 내부만 생각해보더라도, 미술가 개인의 작품이 전하는 의미를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다고들 말한다. 작품에 대한 ‘작가의 말’ 또는 ‘작품내용’이라는 글이 수행하는 통역의 절차에 기대는 것이 일상이다. 작품 자체가, 부가 설명 없이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은, 하나의 작품이 너무 다양한 층위의 이슈를 포괄하기 때문에, 작품이 형성된 배경을 다 훑어보아야만 비로소 작품의 의미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각예술은 점점 ‘말과 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중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작품’은 사라지고 작품에 대한 ‘말과 글’이 작품의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겠다. (이미 그렇기도 하고)

2.

‘호모사피엔스’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유사할 뿐 단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인간들은 이해와 오해와 억측과 짐작이라는 불안한 소통의 장 안에서 아슬아슬하게 같이 사는 중이다. 우리 사이의 ‘공통점’을 말하지만, 공통점에 대한 각자의 정의는 미묘하게 다르고, 그 차이는 뜻밖의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거나, 오해를 증폭시키면서 갈등의 씨앗을 뿌리는 사태를 낳는다. 그 다름의 허들을 극복하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함께 산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다.

그날의 워크숍만 해도 그렇다. 전시기획자로서, 전시를 만들 때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의 움직임을 유도하고, 통제하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하겠다고 한 나의 계획안을 본 무용인들은 전시 동선을 통해 관객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다양한 방법에 대한 시각예술계의 사례를 궁금해하면서 현장에 모였다. (그랬던 것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정작 내가 준비한 내용은 선사시대에서 동시대에 이르는 전시공간의 역사와 전시 방식의 변천사에 집중되어 있었다. 캐비넷에서 화이트큐브를 거쳐 일상의 공간에 이르기까지, 시각예술계가 미술품을 수집하고, 이를 보존하거나 보여주기 위해 호출한 ‘전시장’의 성격과 작품을 선택하는 관점, 배치하는 방식은 너무도 확실하게 각 시대가 미술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목적을 드러낸다. (‘목적’의 타겟은 늘 ‘사람’이다) ‘전시’가 얼마나 손쉽게, 하지만 꽤 은밀한 방식으로 힘 있는 자들의 의도 안으로 관객을 유인할 수 있으며, 그들의 생각과 신체의 움직임에 개입할 수 있는지를 전시의 역사로 설명하는 게 개별 전시의 사례 안에서 동선 설계 방식을 살펴보는 것보다 유의미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허락된 시간의 대부분을 그 이야기에 빠져 설명했다. ‘하기로 한 것들’ 가운데 ‘하는 게 좋겠다’라고 판단한 것에 집중하기로 혼자 결정하고 선택하고 제시한다. 하지만 토론 시간에 참여자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워크숍에 대한 나의 최종 결정과 관객의 기대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인해, 그곳을 찾은 몸들은 다른 현실을 만나야만 했다. 그 기대에서 빗나간 이야기가 막상 무용인들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도 조심스럽게 가져보았다. 그렇게 나는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내 몸과 내 몸의 속도와 내 논리와 명분이 별도의 과정 없이도 타인에게 잘 전달될 것이라는 환상 안에 갇혀 있었던 것 같다.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는 실마리는 무엇일까. ‘지구’라는 환경에서 사는 생명체라는 것, 모두가 ‘몸’을 가지고 산다는 것. 몸에 갇혀 있는 인간들은 단 한 번도 나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없다는 사실도 공유한다. 타인을 통해 나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유사한 행동 집단 안에서 나를 만들어나간다. 인간이 삶을 유지하는 근간에 ‘세상’과의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니까 상대에 대한 이해는 생존의 기본조건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지만 모두가 ‘몸’을 가지고 사는 중이라는 현실은, 손쉽게, 타인의 몸도 나의 몸처럼 생각한다는 착시를 낳는다. ‘몸’이야말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다르고, 가장 개별적이고, 섬세한 번역이 필요한 장소다. 하나의 몸은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에게 번역은 일상이다. 단지, 상대적으로 익숙하여 번역의 시간이 짧게 소요되는 (여전히 오역을 동반하는) 관계가 있고, 익숙하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맥락에 놓여 있기에 그저 시간을 들이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그래서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역시, 여전히 오역을 동반하는) 관계가 있을 뿐이다.

그런 맥락에서 예술가의 예술언어가 갖는 곤란함은 이런 것이다. 예술은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를 뛰어넘는 표현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만국공통어’이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사람들이 기대하도록 만드는 것. 그러나 현실은, 예술가들이 구사하는 각자의 언어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언어에 맞는 학습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언어의 의미는 심지어 고정되어 있지도 않다. 하나의 ‘예술단어’가 수많은 의미를 끌어들이는 경우도 태반이다. 그러니까, 많은 것들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거나, 자꾸 빗겨나간다.

3.

요새 미술인들 사이 유행처럼 떠도는 주제이라고 할 법한 것에 뭐가 있는지 이야기하는 기회가 있었다. 인류세, NFT, 메타버스, 포스트휴먼, 그리고 퍼포먼스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니, 미술이 새로운 출구를 찾지 못할 때, 비단 미술뿐만 아니라 세상이 혼돈에 빠졌을 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옮겨가지 않으면 안 될 때, 사람들은 세상과 맞닿아 있는 ‘몸’을 돌아보고 몸의 움직임에 집중했던 것 같다는, 뇌피셜에 가까운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시각 예술가들에게 ‘몸’은 오랜 세월 창작의 중요한 주제이자 소재로 존재해 왔다. 서양미술사의 흐름 안에서 거칠게 살펴보자면, 그리스인들은 올림픽에 출전한 훈련된 아름다운 몸을 도자기에 그려 넣었고, 이집트인들은 죽은 자의 관 위에 그의 생전 모습을 그린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은 신체의 움직임을 좀 더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해부학에 매달리면서 근육과 뼈의 구조를 탐구하고 작품에 담았다. 살아있는 자의 생기를 화면에 고스란히 담고 싶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가 윤곽선을 흐릿하게 그리는 스푸마토(Sfumato) 기법을 발명한 일은, 화가들의 욕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9세기, 에드워드 머이브릿지(Eadweard Muybridge)의 카메라는 막연하게 상상하던 움직임의 순간을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냈다. 달리는 말의 연속 동장이 담긴 열두 컷의 사진은 질주하는 말의 발굽 넷이 모두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당대 사람들의 호기심을 해결해주었다. 늘 보고 있지만 인간 신체 역량의 한계에 갇혀 있는 인간이 미처 파악할 수 없는 세계는 그렇게 베일을 벗었다. 한순간도 고정되어 있지 않은 인체를 작품 안에 고정해 온 시각 예술가들에게 ‘영화’는 몸의 움직임을 제법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혁명적인 매체가 되었다. 영화의 한계라면, 움직임의 시간은 기록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삼차원의 공간성을 온전히 수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겠다. 이제 그 문제는 VR이 해결하겠다고 나선 모양새다. 꽤 많은 미술가가 VR로 작업을 시작했다.

20세기 초 활동한 미래주의자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의 그림 속 강아지는 마치 20여 개의 다리와 예닐곱 개의 꼬리를 가진 존재처럼 그림 속에서 동동거리고, 강아지의 목줄을 쥔 사람의 다리 역시 스무 개는 돼 보인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Duchampiana: Nude Descending a Staircase)>(1976)도 한 사람이지만 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화면 속 계단을 반복적으로 중첩하면서 점유한다. 반복이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미래주의 조각가 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i)는 <공간 속에서의 연속적인 단일 형태들(Unique Forms of Continuity in Space)>(1913)라는 조각에서 고정된 조각으로 움직임을 구현하는 언어를 개발한다. 움직이는 자의 역동적인 순간을 포착한 이 조각은 시간, 공간, 움직임을 하나의 조각상 안에 붙잡는 실험에 비교적 성공했다. 조각은 멈춰 있지만 멈춰 있지 않은 것처럼, 공간 안에서 걸으면서도 서 있다.

미래주의자들의 “우리가 화폭 위에 재현하고 싶은 것은 역동적인 세계의 고정된 한순간이 아니라, 세계의 역동성 그 자체이다.”라는 선언 안에는 시공간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소리, 빛, 운동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동시성을 향한 미술인들의 소망이 간절하게 드러난다. ‘움직임’을 표현하는 데 강렬한 열망을 가지고 있던 미래주의자들은 근대과학기술의 소산인 기계와 속도에 경도되어 있었다. 그 태도 근간에 인습적인 아카데미즘을 부정하는 관점이 깔려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격변기를 통과하는 예술가들이 ‘움직임’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선명해진다.

라틴어 ‘밀려오는’에서 유래하여 유동, 유출, 변전을 뜻하는 의미로 1960년대 등장한 플럭서스(Fluxus)는 일종의 반예술적 전위운동으로 미술, 음악, 공연, 무용, 영화, 디자인, 출판, 건축, 과학 등 다양한 분야,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가 함께 했다. 기존의 예술과 문화, 그것이 양산하는 시스템을 모두 불신하고, 예술의 전문화, 예술적 자아를 증진시키는 모든 예술 형태에 반대하면서 삶과 예술을 통일시키고자 했던 이들의 활동은 매우 ‘퍼포머티브(Performative)’하다. 그들은 예술적 의도로부터 비롯되는 인위성, 그 부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나, 어떤 내용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저절로 구성되는 것을 꿈꾸었다. 오브제의 재현이나 오브제 구성의 활동으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관계에 주목했다.

4.

시각예술에 ‘움직임’이 들어온 맥락은 실험, 혁신, 도전의 길 위에 놓여 있다. 고정된 예술품에 운동성을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나가던 시각 예술가들에게 ‘신체’의 움직임이 함께 하는 ‘퍼포먼스’는 한발 더 나아간 ‘실험’으로서의 조건을 충족시킨다. 고정된 세계에서 변화하는 몸의 존재는 그 자체로 ‘새롭다.’ 그리고 작업에 ‘몸’이 들어오는 순간, 그 자체로 퍼포먼스는 성립되었다고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래서, 들어온 몸이 무엇을 하느냐까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미술인과 협업하는 무용인들을 종종 당혹감에 빠뜨리는 사례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

미술사에서 퍼포먼스 아트를 독립된 예술 언어로서 고려하고 연구한 시점은 1970년대이지만, 미술사학자와 공연학자들이 퍼포먼스 아트의 출발점으로 삼는 장면은 공통으로 미래주의의 대중연극이다. 1910년 7월 8일 미래주의자들이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에서 대중들에게 정치적 유인물을 뿌린 사건으로 퍼포먼스 역사의 첫 장을 연다. 시각예술가들은 형식주의 모더니즘 미술에 반발하면서 등장한 해프닝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고, 공연예술가들은 주류 연극의 텍스트 중심주의, 관객을 제4의 벽으로 여기는 전통무대의 작동방식에 대한 질문을 끌어내는 맥락에 주목한다.

동시대에는 퍼포먼스 연구를 통해 분과 학문의 태도가 가지고 있는 실천적 한계를 인식하고, 확장된 개념을 통해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인간과 세계의 이해에 도달하려는 측면이 강화되는바, 퍼포먼스는 규정된 세계 바깥, 경계에서의 가능성을 여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퍼포먼스의 한 가운데 ‘몸’이 있다.

5.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다시 ‘워크숍’에서의 실수가 떠오른다. ‘서로 다른 예술언어 사이 번역의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시작한 글이 계획보다 좀 늦게 ‘퍼포먼스’에 도착했다. ‘퍼포먼스’를 통해 미술가들이 구현하고자 하는 그림에 필요한 움직임의 밀도에 대한 감각과 좀 더 치밀한 장치로 ‘퍼포먼스’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무용인들이 ‘퍼포먼스’라고 정의할 수 있는 작업 사이의 간극이 야기하는 오해에 대한 이야기는 건너뛰려고 한다. 끝으로 움직이는 몸의 가치가 예전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VR처럼, 움직임의 매커니즘을 돌이켜보게 하는 기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질문을 남기고 이 지면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