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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으로 연결된 공연의 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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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577회 작성일22-03-12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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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으로 연결된 공연의 조각들
김치앤칩스 <Collective Behaviour> 리뷰


 

양은혜_춤in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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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ve Behaviour〉, 사진제공 Kimchi and Chips

실제 극장과 가상세계가 연결된다면 관객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현장성(liveness)이 고유한 요소로 작동하는 공연에서 작품을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 토큰)로도 판매한다는 것, 더욱이 그것을 극장에서 판매한다는 것만으로 이미 깨어진 극장의 틈새에서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극장의 로비가 떠들썩하다. 보통의 극장 로비보다 유난히 구불구불한 여러 줄이 있는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QR코드 전자출입 명부와 공연 티켓 판매 그리고 NFT 판매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익숙해져 평범한 풍경이기도 하나 팬데믹으로 인해 현장 위주로 이뤄지던 공연이 NFT로도 시도되고 있는 현 상황을 이 세 개의 줄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더욱이 국내 공연예술계의 무용 분야에서 NFT를 판매하는 것은 첫 사례로 이 형식에 주목하게 된다. 더욱이 홍보문구에서 굿즈 NFT나 공연영상 NFT가 아닌 ‘공연 NFT를 직접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상상력이 증폭된다.



공연 수익 대안으로 떠오른 NFT

〈Collective Behaviour〉의 기획과 예술감독을 맡은 김치앤칩스가 NFT를 제작하고 판매하게 된 것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금으로 발표하는 작품은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를 비판하면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국가의 지원금을 받아 창제작된 작품에서 수익을 낼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보통 공연의 유료 티켓비는 단체의 수익보다 수입으로 제작과정에서 지원금 이상으로 지출된 비용 정산으로 이뤄진다. 기재부의 지침은 지원금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발표할 수 있도록 하되 수익은 반납하고 대신 차기 연도부터 완성한 작품으로 수익활동을 하라는 것이지만 공연은 다수의 인력이 모여야만 가능한 것으로 무일푼으로 수익형의 작품 활동을 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지원을 받아 작품을 발표한 이력이 있어 이후 지원을 받지 않고 공연하려면 단체가 티켓 수익으로 수익 분기점을 낼 수 있는 자금이 있거나 투자가 필요하다. 솔로 공연이든 대규모 인원이 투입되는 공연이든 각 분야의 인력과 극장 시스템이 운영되는 것은 동일한 에너지다. 더욱이 연습기간 동안 인건비와 연습실 대관비, 극장대관비와 무대 인력 및 홍보마케팅비용 등을 충당하려면 좌석 당 비용과 기간을 환산하였을 때 최소한 일주일 이상을 롱런해도 가능성이 희박한데, 관객이 무용공연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는지, 작품을 창제작하는 예술단체는 관객과의 소통을 얼마만큼 고민하는지, 결국 이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클리셰한 질문으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공연예술단체들은 유료 티켓 비용 또한 사업에 투입될 수 있도록 증빙을 하여 공연을 유료로 운영한다. 이렇게 한다 한들 이 모든 비용은 해당 공연에 한한 것으로 이다음의 계획을 자본 없이 단체가 자체적으로 세울 수 없다. 본 공연에서 NFT의 판매는 이러한 배경에서 이뤄졌으며 김치앤칩스는 이를 자신들만의 문제가 아닌 예술계의 현안으로 바라보고 작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 ‘ToiToiToi’를 개발하였다. 예술작품 제작비의 원천이 어딘지에 따라 예술가의 상상력과 자생 방식, 개성은 당연히 다양해질 것이다.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김치앤칩스는 ‘무료공연과 관객의 자발적 기부금’이라는 컨셉을 그려 ‘좋은 공연과 자발적 NFT 구매’로 그 모양새를 갖췄다. 공연이 무료인 것은 유료 티켓 비용을 반납하지 않고 지원받은 작품 발표만으로 공연은 하되 이와 별도로 개발한 NFT작품은 관객이 자발적으로 구매하도록 하여 김치앤칩스의 다음 제작비와 부족했던 비용을 충당하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이틀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극장에 직접 방문한 관객이 NFT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희소성과 무료 공연을 관람한 관객의 자발적 판단으로 인한 구매는 예술단체를 향한 후원, 투자로 작동한다. NFT작품은 작품 당 10만 원이며 관객은 추후 구매한 토큰의 암호를 통해 크립토 지갑으로 가져올 수 있다. NFT는 구매 후 추이를 통해 유동하는 상품 가치를 주목할 수 있는데 리뷰를 작성하는 현재(2월) 시점에서는 아직 별다른 활동이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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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ve Behaviour〉, 사진제공 Kimchi and Chips

로비에서 NFT작품을 구매하고 무료로 들어온 객석에 앉아 눈앞의 공연을 관람하니 어디에 가치를 지불했는지 질문이 스친다. 눈앞에 무용수들은 음악에 맞춰 동작을 취하고 있었고 필자의 손에는 화폐가치와 맞바꾼 토큰 번호 종이가 쥐어져 있었는데 그것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눈앞의 공연보다 손에 잡힌 물성에 이목이 더 집중되었다. 공연을 소유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공연예술의 역사에서 관객이 작품을 소유하고자 한 욕망이 있었는가. 작품 소장의 역사가 있는 시각예술분야에서는 NFT 작품 제작과 판매로의 전환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중개인을 거치지 않은 작가와 소비자 간 직거래를 통해 중개수수료 없이 양자가 직접 소통하며 작품을 판매할 수 있으며 블록체인상 토큰화 되어 있기에 원본과 위조의 구분이 확실하고 작품의 소유자와 소유권 이전 등의 기록이 업데이트된다는 점에서 희소성과 원본의 증명이 명확하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공연이 NFT 작품으로 된다면 무용수의 초상권과 공연의 현장성이 어떻게 코드화 되는지, 안무가 코드화 되는 것인지 등의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NFT의 원리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JPG, GIF, MP4 등으로 디지털화된 파일을 블록체인에서 발행(민팅, minting)하였을 때 각각의 파일이 원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본은 하나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각각의 파일에 발행된 토큰 번호가 고유한 원본이 되는 것이다. 단, 창작자가 NFT 디지털 파일에 대한 소유권만 판매하거나 실물 작품까지 페어링(paring)1 하여 향후 실물 예술작품과 교환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퍼포먼스를 NFT로 판매하는 경우 안무의 맥락에 따른 움직임, 퍼포머의 출연 등을 고려해 윤리적인 맥락의 접근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휘발되는 안무를 소장하거나 틱톡(TikTok)과 같은 특정 안무 등을 소장, 온라인과 실제 공연의 연결을 하는 등 NFT를 창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상상을 할 수도 있다. 최근 ‘NFT공연’, ‘NFT퍼포먼스’ 등의 검색을 하면 뮤지컬 분야에서는 NFT 티켓 판매와 더불어 굿즈 판매가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공연과 NFT상품이 연결되고 있어 온라인과 실제 세계 간에 활동과 경험의 상호관계가 성립되고 있는 것이다. 공연의 형식 또는 작품의 연결 등으로 작품의 조각들은 실제와 가상세계를 오가며 자연스러운 연결을 이끌어낸다.



공연의 형식을 입은 퍼포먼스

극장에서 세 장면으로 구성된 <Collective Behaviour>는 세 명의 무용수들이 손전등으로 자신의 몸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몸은 반사효과를 지닌 코튼을 사용으로 무용수의 동작에따라 확장하고 여러 켜의 거울 프레임과 조명을 통해 무용수들이 집단으로 보이는 방식을 취한다. 첫 장면이 한 사람의 개별적인 움직임으로 시작되었다면 두 번째 장면은 두 사람의 관계, 세 번째 장면은 집단의 현상을 보인다. 퍼포머의 몸이 인간의 군상으로 증식되는 모습은 개인과 단체 간 움직임의 모티프를 오가며 무엇에 의한 것인지 착시를 일으킴과 동시에 서로 다른 입장의 관계성이 분리될 수 없음을 나타낸다. 한 사람의 움직임이 일으키는 파장은 재료를 통해 확장되며 그에 반사된 형태들은 착시를 일으켜 공간의 안팎, 실체와 허구, 주체와 타자의 경계를 집단적인 모습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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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ve Behaviour〉, 사진제공 Kimchi and Chips

세 명의 무용수들의 몸은 재료들을 움직여 설치작품의 의도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무용수들의 움직임만으로는 본 작품의 의도는 드러날 수 없다. 이들의 동작과 이동이 설치작품에 투영됨으로써 작품의 의도가 드러나는 것으로 연출은 설치작품을 기준으로 맞춰져 있다. 무용수들의 몸뿐만 아니라 극장의 조명, 음향 또한 동일한 재료로 사용된다. 이야기가 없는 몸을 보며 극장의 무대는 무엇을 담아왔으며 관객은 무엇을 보아 왔었는지에 재고하게 된다. 몸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으며 설치물에 투영된 몸의 형태들로 작품의 의도가 전달된다. 광장에서 시작된 관계는 걸어가는 한 사람과 그를 보는 다른 한 사람이기에 극장의 관심은 애초부터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이야기이며 연극이고 극장이다. 동시대 극장의 형식을 해체하고 재해석한 작업들, 퍼포머의 신체를 대신하여 사물이 전개하는 공연을 보아도 사물이 신체성을 입는다.


약 50분간의 런 타임 동안 세 가지 재료를 기준으로 구성된 세 장면의 퍼포먼스를 객석에 앉아 한 방향으로 관람하는데, 프로시니엄으로 인해 2차원으로 납작해진 설치작품이 3차원으로 살아나는 것은 퍼포먼스 종료 후이다. 무대에 남은 거울 작품은 가파른 계단형 객석을 내려오는 관객을 비춘다. 무대의 막이 내려오지 않은 채로 관객을 비추는 작품 사이로 관객은 바로 퇴장하지 않고 무대를 자유롭게 오가며 작품을 감상하고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개방된 무대를 경험한다. 일반 공연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다. 50분간 짜 맞춰진 동작으로 예측 가능한 리듬의 연속이 진행되었다면 공연 종료 후에는 관객들의 예외의 움직임과 거울로 반사된 자신을 비롯한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그 속에서 관계가 생성되었다. 무대를 오가며 작품 주변을 맴돌자 정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품의 입체성이 드러난다. 작품과 관람자의 몸이 관계를 이룬다. 정면에서는 발휘되지 않던 인터렉션이 무대의 프레임 안에서 발생한다. <Collective Behaviour>는 공연의 형식을 입은 전시 퍼포먼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극장을 나서며 이미 과거의 시간으로 사라진 공연과 온라인으로 소유하게 된 공연의 조각이 유성의 꼬리처럼 이어졌다. 250개의 공연의 조각은 온라인의 시간 속에서 가치와 희소성이라는 기준으로 새로운 퍼포먼스를 펼치게 될 것이다.

  1. 1)성소라, 롤프회퍼, 스콧 맥러플린, 『NFT레볼루션』, 더퀘스트, 2022, p.87.
양은혜_춤in 편집장양은혜는 무용과 문학, 문화를 전공하여 현재 건축학 박사 과정 중에 있다. 몸과 공간의 상호 관계성을 연구하며 스튜디오그레이스 대표로 공연기획활동과 코레오그레피뷰 출판 활동을 하고 있다.
snowtanz7@gmail.com @eun_hye_yang
공연명: 
Collective Behaviour 콜렉티브비해비어
일자: 
2022.1.21 - 2022. 1. 22(토) 15:00, 19:00 총4회
장소: 
서강대학교메리홀 대극장
기획 및 예술감독: 
Kimchi and Chips
안무: 
Simone Wierød
음악: 
M€RCY (with Josefine Opsahl)
무용: 
전보람, 전우상, 송윤주
조명: 
김치앤칩스, 박현정, 박진희
프로듀서:
이소영
비디오: 
Tim Panduro
프로덕션: 
씨투아테크놀러지
NFT 기술개발: 
김치앤칩스, 박세민
의상: 
Marie Nørgaard Nielsen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덴마크예술청
관련정보: 
kimchiandchips.com